악성 베토벤은 말년에 서서히 청력을 잃었지만, 음악을 향한 그의 의지는 꺽이지 않았고 들을 수 없는 귀를 사용해 음악을 들으며 주옥같은 음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 <금속 소리 (2020)>는 베토벤처럼 위대한 음악가가 아닌 한 평범한 드럼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다. 르우벤Rueben(리즈 아메드Riz Ahmed)은 여자 친구 루Lou(올리비아 쿠크Olivia Cooke)와 함께 침대 및 간단한 생활용품이 설치된 자동차(camping car)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음악을 연주하며 살아갔다. 루는 노래를 부르며, 르우벤은 드럼을 연주하는 헤비메탈 락 음악가다. 영화는 어느 날 르우벤의 귀에 이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강렬한 헤비메탈 록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드럼을 치던 르우벤이 한순간 완벽한 침묵이 청각을 사로잡은 순간에 소스라치게 놀라 연주를 멈추고 연주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안정을 찾았다. 다시 미세하게나마 주변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그랬으니 이 또한 지나가겠지 생각하며 아무 일 없었다고 생각하며 또 다른 연주 장소를 향해 자동차를 운전했고, 해가 저물자 외딴 지역에 차를 주차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르우벤은 세상이 침묵에 잠긴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다. 서둘러 병원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자기 청력이 청각장애자의 상태와 비슷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르우벤은 루의 도움으로 청각장애자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조Joe(폴 레이시Paul Raci)를 만난다. 베트남전 참전 후유증으로 청각을 상실한 조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청각장애자를 위한 공동체를 설립했고, 청각장애자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르우벤도 그곳에서 생활하며 수화도 배우고 청각장애자와 교류하며 장애인으로서의 새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르우벤은 그러질 못했다. 청각을 회복하는 대로 루를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일한 소유물인 자동차를 팔았고, 그 돈으로 청각장애자를 위한 특수 보청기를 귀속에 설치했다. 수술 후 회복기가 지났고 다시 병원에 찾아간 르우벤 귀에 보청기가 끼워졌다. 설렌 마음으로 보청기에 전원을 넣었다.
찌지직, 삐이익, 윙윙. 르우벤 귀에 들려온 소리는 세상의 소리가 기계 소리, 금속의 소리, 철의 소리였다. "결코 이전의 소리를 다시 찾을 수는 없지만, 보청기에 의지해서 일상생활은 이전처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루빨리 새로운 소리에 적응하길 바랄게요." 담당의사가 말했다. 새로운 소리에 적응하며 르우벤은 루를 찾아갔다. 둘은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말없이 짐작했다. 그래서, 르우벤은 다음날 아침 소리 없이 루의 집을 나선다. 거리를 걷는 동안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온통 기계 소리, 금속 소리다. 금속 소리에 지친 르우벤은 길거리에 설치해둔 의자에 앉았다. 그때 어디선가 시간을 알리는 거대한 자명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금속 소리가 르우벤의 귀를 갈기갈기 찢는 거처럼 느껴졌다. 르우벤은 보청기를 귀에서 빼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침묵이, 무의 소리가, 르우벤 귀속으로 들어왔다. 자명종 소리와 함께 변함없이 달리고 있는 시계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르우벤. 흐르는 시간을 인지하는 건 눈과 귀가 아니라 마음이란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소리가 소리일 수 있는 이유는 소리 없음, 유가 유일 수 있는 이유는 무가 있기 때문이란 걸 난생처음 알게 되었다. 르우벤은 눈을 감았다. 삶을 삶 되게 하는 건 어쩌면 죽음이지 않을까? 눈을 감은 르우벤은 무로 돌아갔다. 그리고 <금속 소리> 영화 또한 무로 돌아갔다.
노자의 도덕경 81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참한 이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 잘하는 이는 참하지 않다.
아는 이는 넓지 않고,
넓은 이는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지 않으니,
이미 다른 이를 위하기 때문에 자기는 더 가지며,
이미 다른 이에게 주기 때문에 자기는 더 많다.
하늘의 도는 해롭지 않고 이로우며,
성인의 도는 싸우지 않고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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