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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ther 아버지 (2020)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1. 4. 1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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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ther (2020)

 

앤서니Anthony(Anthony Hopkins)는 딸 앤Anne(Olivia Colman)이 소개해주는 돌봄이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며, 누구의 도움 없이도 홀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80세 노인이다. 그렇지만, 앤서니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노인인데,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에 기억과 현실 인지력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의 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딸 앤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주변 사람이 한 노인의 재산을 탐내 약해지는 그의 기억력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거 같다. 딸 앤이 다른 사람으로 갑자기 바뀌고, 앤의 남자 친구 역시 남자 1에서 갑자기 남자 2로, 다시 남자 1로 바뀐다. 앤서니는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자기를 놀리고 있는지를 두고 염려하고 갈등한다. 딸아이 집을 자기 집으로 인식하고, 그랬기에 집안 가구 배치도가 변했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길 반복한다.

 

        나에게 '나'라는 자의식을 건네주는 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했던 무수한 인간관계, 그 인간관계가 내 마음에 남긴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을 일괄적으로 요약, 정리해서 만든 기억이다. 영화 <아버지>는 그게 틀렸다는 걸 처음부터 점진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준다. 우리에게 '우리'라는 자의식을 건네주는 건 인간관계도, 기억도 아니었다. 그건 뇌세포 간의 건강한 상호작용이었다. 뇌세포 간 상호작용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우리'라는 자의식을 잃기 시작한다. 현실 인지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단기 기억 상실의 무한반복과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을 바꾸는 뇌 세포 간 상호작용에 문제가 발생하면 과거의 기억과 직면한 현재에 대한 인식 능력이 만든 기억 사이에 혼선이 생기고, 과거와 현재는 복잡다단하게 뒤섞여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한다.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직은 제법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뇌를 가진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관찰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노인 요양원 담당 간호사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앤서니에서 창밖 풍경으로 카메라가 천천히 점진적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담당 간호사 품에 안긴 앤서니는 어린아이로 변해 있었다. 80세 노인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기억할 수 있는 뇌세포 간 상호작용에 문제가 생기자 그의 자의식은 이성에서 감성으로 옮겨갔고, 결국 당황스러움과 불안함을 울음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어린아이로 변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숲은 불어오는 바람에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일어나 일이라고 믿는 과거의 한 사건에 대한 기억 역시 세월이란 바람에 쓸려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까? 한 가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영화 속 주인공 노인 앤서니는 홀로 자기 기억이란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려야 했지만, 바람 앞에서 자연은 부분이 전체와 함께, 전체가 부분과 함께, 모두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연대와 연민, 동정 어린 관계의 필요성을 영화는 창밖으로 보이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자연이란 거대한 전체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저곳이다. 네가 가야 할 곳도 저곳이다. 우리의 우리 됨을 잊어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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