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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랜튼-필 정신분석 연구소

정신분석과 인생분석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6. 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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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ton-Peale Institue & Counselling Center

 

"목회상담학 박사 학위 소지자 중 상담 자격증도 갖춘 인재를 찾는 신학대학원이 늘어가고 있어요. 그러니, 가능하면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갖추는 게 좋을 거예요." 드류신학대학원 종교와 심리학 박사 과정 지도 교수님이셨던 손 안젤라 교수님이 박사 과정 중인 내게 여러번 암시처럼 이 말씀을 해주셨다.

"네, 하면 좋은데요. 경제적인 상황이 그리 넉넉하질 못해서 그냥 공부에만 일단 전념할 생각입니다." 솔직함이 두리뭉실함보다 낫다고 믿는 나는 나름 솔직하게 '경제'라는,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나 스스로를 방어했다.

 

          1년, 2년, 3년. 공부는 청소 다음으로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일단 학생으로 신분을 만들어둔 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학교가 제공하는 과정에 머물며 버티면 졸업증을 손에 들고 학위를 따낼 수 있다. 박사 과정만 빼고. 박사 과정은 필수 교육 과정을 마치면 종합시험Comprehensive Examinations을 치러야 한다. 드류신학대학원은 4가지 시험을 학생이 직접 설계해서 치를 수 있게끔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내가 치를 시험을 지도, 감독한 후 채점까지 할 교수님도 내가 결정해야 하고 교수님께 상황을 설명한 후 동의를 얻어야 한다. 2년 필수 교육 과정이 끝난 후 잠깐 숨을 돌린 후, 4가지 시험을 향해 힘껏 돌진하면 보통 1년 6개월에서 2년 안에 종합시험을 마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박사 학위 논문과 관련하여 외국어 시험에서 학교가 통과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4가지 종합 시험, 2가지 외국어 시험을 '무사히' 마치면, 드디어 박사 학위 소지 지망생Ph.D. candidate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박사 과정에 들어와 한껏 어깨와 목에 힘을 주고 박사가 될 날을 꿈꾸며 교정을 돌아다닐지라도 박사 과정 학생Ph.D. student일 뿐이다. 

 

          종합시험을 치르면서 깨달았다. 나름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막상 뒤돌아보니 심리학에 관해 아는게 거의 없다는 냉정한 진실을 깨달았다. 인문학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학문 중 하나가 심리학인데, 이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한 역사 심리학을 통해 바라본 20세기 한국 개신교: 트라우마와 집단 열등의식A Jungian Psychohistorical Analysis of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in the 20th Century: Trauma and the Collective Complex of Inferiority」라고 이름 붙인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깨달았다. 심리학만 모르는 게 아니라 상담에 있어서 '상'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경험도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뉴욕 맨하튼 중심에 위치한 블랜튼-필 정신분석 연구소Blaon-Peale Institute에서 운영하는 정신분석가 과정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사람의 마음. 열 길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는데, 정신분석가 과정을 시작하면 정신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까? 그럼, 내 인생을 조금 더 알차게 살 수 있을까? 다른 이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2020년 5월 중순 무렵 정신분석가 과정 4년 중 2년차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무사히'란 부사에 강조점을 단 이유는 정신분석가가 되는 과정,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사 학위는 세상과 담을 쌓고 혼자 동굴 속에 들어가 공부하면 된다. 끝없이 읽어야 하고, 쉬지 않고 요약정리해야 하는 석학들의 명저는 끝없는 자극과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들에게 받은 영감과 자극을 재료 삼아 환상과 현실 경계선에 서서 또 다른 세상, 살고 싶은 세상, 만들어 보고 싶은 세상을 마음껏 꿈꿀 수 있다. 마음속에 남은 꿈의 잔상을 글로 옮기다 보면, 논문 지도 교수와 몇 번 얼굴을 붉히는 순간도 찾아 온다. 지도 교수의 승인이 없으면 제자리 걸음 말고는 할 게 없기에 조심스레 눈치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서 다시 또 시작하고, 그러다 그런 내가 못마땅해 냉담하게 돌아서고, 그러길 반복해도 어쨌든 하루에 몇 줄이라도 쓰려고 발부둥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너 명의 교수님이 한 자리에 모여 이만하면 됐다고 선언하는 순간, 동굴 밖으로 나올 시간이 찾아온다. 불현듯.

 

         정신분석학은 달랐다. 동굴 속에 들어가면 나르시즘narcissism, 동굴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오면 강박증obsessive-compulsion, 홧김에 동굴 속에서 크게 소리 한 번 잘못 지르면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울증depression, 자꾸 꿈만 꾸다 보면 편집증paranoid, 세상과 담을 쌓고 나만의 세계에만 머물려고 하면 정신병psychosis, 세상에 의지할 이 나밖에 없다고 굳게 믿으며 냉정하게 대처하면 사회병증sociopathic,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마음을 과감하게 모른 척하면 다인격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dissociation, 정신분석가의 견해를 외부로 투사하여 안정감을 회복하기 이전에 나 자신에게 비추어볼 수 있는 차분함과 인내를 배워야 했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알지만 계속 배우려 노력한다. 그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정신분석학은 책상에 홀로 앉아 하는 공부와 시작부터 다르다. 정신분석학은 환자 혹은 내담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방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지만 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의식의 영향력을 알아채고, 그가 살아온 삶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기본적 인지/인식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알아내는 걸 첫 번째 과제로 삼는다. 탁상공론의 한계에서 출발했고, 관찰과 경험, 깨달음이 가져다주는 통찰을 통해 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그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론화하고 구조화하는 걸 두 번째 과제로 삼는다. 세상은 변한다. 변하는 세상 속에 사는 인간 또한 세상과 함께 계속해서 변한다. (만약에 정신을 구조와 체계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한 인간의 정신구조 또한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변한다. 변함 속에서 변하지 않고 정체된 채 흘러가는 정신 구조 아래에 고여 있는 물, 이 물줄기를 찾아내어 다시금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틀어주는 거. 그걸 정신분석학에서 치료라고 부른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그걸 제대로 잘 소화해야 한다. 지금 난 정신분석학을 먹고 있다. 잘 먹을 거고, 잘 소화할 거다. 신학과 비교할 때, 적어도 심리학은 바람을 잡으려는 무모한 노력처럼 여겨지지는 않아서 좋다. 항상 누군가가 내 앞에 앉아 있고, 난 그의 혹은 그녀의 이야기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며 집중한다.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정체되어 있는 주제를 찾기 위해서,  끝없이 움직이는 이야기가 끝없이 맴돌고 있는 소화할 생각도 제대로 해 보지 못했던 추억 속에 숨겨진 아픔의 이야기를 찾아 내기 위해서 난 오늘도 귀 기울이고 듣는 법을 블랜튼-필에서 훈련한다. 

 

2020년 6월 17일 화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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