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전 금요일 밤에 한국 영화를 봤기에 지누에게 슬쩍 물었다.
“지누야, 오늘은 미국 영화를 볼까?”
“한국 영화 보는 거 아니었어요?”
“왜? 너도 한국 영화가 더 재밌냐?”
“네, 한국 영화가 더 재밌는 거 같아요.”
그래서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봤다.
한국 신화의 넓이와 깊이에 깜짝 놀랐다.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 대학교 시절 죠셉 캠벨의 신화관을 사랑했던 나는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신화 이야기를 만나면 요약하고 정리하며 외웠다. 어디선가 써먹을 날이 오겠지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단 한 번도 한국 신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한국 신화는 단군 이야기가 전부였다.
영화가 시작하자 몇 가지를 설명하는 자막 중 한국 설화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한국 신화인가? 중국 신화겠지.’ 그렇게 단정했다. 삶과 죽음, 지옥과 환생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가 영화가 기초한 한국 신화의 기본 도식이었다. 죠셉 캠벨의 말이 생각났다. 동양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을 요약한 단어, 원형회귀. 영원토록 돌고 또 도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 니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수 천 년 전 그리고 수천 년 후 우리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서 있었고 다시 서 있을 거라고. 한국 신화는 삶을 니체처럼 단호하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영원한 행복이 없기에 영원한 불행도 없다. 힌두교와 불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조상들은 자연 밖을 벗어나는 인간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환생할 수는 있지만 해탈할 수는 없다. 해탈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인연’이란 불교 개념이 들어오기 전부터 조상들은 삶이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만들어가는 거라 생각했다.
조상들은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면 이승에서의 삶을 검사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 만 권 책에도 다 적을 수 없는 한 인간의 삶에서 딱 일곱 가지만 검사한다. 그러니, 이 일곱 가지는 한반도에 정착한 조상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다.
1. 생명 존중. 누군가를 죽였는가? 살인에는 직접 살인과 간접 살인이 있는데, 저승에서는 간접 살인도 직접 살인으로 간주한다. 고로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2. 근면과 성실. 부지런하게 살았는가? 이규태, 이어령 선생님은 한국 문화를 연구하면서 한국인에게 부지런함이 미덕이 된 이유를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봄에 벼를 땅에 뿌린 후 놀고먹다가 가을에 논고 밭에 나가 추수할 수 있는 벼농사를 위한 기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쉬지 않고 벼를 돌봐줘야지만 가을에 쌀을 먹을 수 있는 자연환경.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은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의 기술에 대한 정당화 작업이다.
3. 이타심. 자기 속만 채우면서 이기적으로 살았는가? 아니면 다른 이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살았는가?
4. 정의. 정의로운 삶을 살았는가? 그러지 못했다면 불의 지옥에서 차가운 얼음에 갇힌다.
5. 신뢰. 자신을 믿어준 다른 이를 배신하며 살았는가? 그랬다면 배신 지옥에서 거울에 갇힌 채 끝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인내 그래서 사랑. 다른 이에게 폭력을 가하며 살았는가? 그랬다면 폭력 지옥에서 하염없이 날아오는 돌멩이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7. 효도. 부모님께 잘했는가? 환생을 위한 최후의 관문인 천륜 지옥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은 죽은 이가 이승에서 부모님께 잘 했는지를 확인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사랑을 궁극적 가치라고 주장하는데, 한국인은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사랑보다 더 큰 가치로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거, 내가 연인이다 믿기 시작한 이에게 잘 해주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부모님을 몸과 마음으로 존경하고 모시는 건 부단한 자기 극복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훌륭했던 두 인간의 나약함과 늙어감을 인정하며, 나 또한 당신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없다면 효도를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마지막 완성은 효도다.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한 한국 문화의 본질이 한국 신화에, 그것도 저승 세계에 관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생명 존중, 근면과 성실, 진실, 신뢰, 인내 그래서 사랑 (정말 다양한 폭력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은 받아들임이고, 난 그게 사랑의 핵심 가치라고 생각한다), 효도. 한국인은 이 일곱 가지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했다. 서구 문명이 강조하는 자기극복, 자기 실현은 옛 조상이 바라본 세계관에서는 그리 중요한 가치는 아니었다.
조선 시대 한 미국 선교사는 한국 지리에 어두워서 현지인 여행 길잡이를 한 명 고용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선교사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길잡이에게 주려 했다. 길잡이는 역정을 내며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갔다. 의아함에 그 선교사는 이 일을 여행기에 남겼다. 길잡이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 선교사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박 씨는 미국 선교사를 돕기 위해, 그저 돕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안전하게 선교사를 목적지에 데려다줬다. 선교사의 안전, 그게 그가 원한 모든 것이었단다. 옛 조상들은 그렇게 살았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미련한 행동을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
평창 올림픽이 한 참 진행 중인데, 한 외신 기자가 경찰이나 군인을 올림픽 경기장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없지만, 너무 평화롭게 올림픽이 열릴 수 있는 이유를 한국인에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근대화’와 ‘최신식’이라는 신기루 같은 관념 세계에 중독되어 깡그리 잊어버렸지만,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두 가지 상반된 관념이 여전히 대치 중인 한반도에서 열리고 있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속에 담긴 평화로움과 안정은 사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지옥과 환생이라는 오 천 년도 더 된 한국인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나’가 사라진 ‘우리’는 한국형 카스트 제도로 전락한다. 하지만, ‘나’를 제대로 세운 후 ‘우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오 천 년 역사가 우리 몸속에 심어놓은 한국인의 심성과 특징은 후기 현대사회가 양산하는 각종 심신병을 안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영양분이 될 수 있다. 이 전통을 앞으로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더 창조적으로 잘 살려내야 할 텐데. 이 전통을 지누와 미누에게 잘 전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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