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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Joker(2019)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9. 12. 25.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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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ker (2019)

"정말 강렬해서요. 두 번 극장에 가서 봤습니다."

"강렬이라... 무엇이 그리 강렬했지요?"

"가난에 대한 처절한 현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느껴져서요."

집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나누던 담소가 최근에 본 영화로 방향을 틀었을 때 나보다 12살 어린 후배님이 말했다.

 

     배트맨이 정의의 사도라면 불의의 사도가 있어야 한다. 영화 속 악당의 대장 역할을 맡은 이의 이름이 조커다. 영화 조커는 배트맨 영화 속 악당 대장 조커가 어떻게 해서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첫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허름한 분장실에 앉아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 밑도 끝도 없이 그가 웃는다. 그런데, 분명히 웃고 있는데 오른쪽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슬프지만 웃어야만 하는 광대의 내면 속 갈등을 영화는 표현하고 싶은 걸까?'라고 물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 한복판에 광대 옷을 입은 그가 가게 간판을 들고 열심을 춤을 춘다. 일일 호객 행위를 위해 일하는 중이다. 잠시 후 청소년 아이 네 다섯 명이 광대의 간판을 빼앗아 도망간다. 광대는 가빠지는 숨을 가까스로 통제하며 아이를 뒤쫓는다. 막다른 길에 접어든 세 명의 아이가 광대가 다가오는 걸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는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광대가 바닥으로 넘어진다. 두 명의 아이가 골목길에 놓인 대형 쓰레기통 뒤에 숨어 있다가 광대에게서 빼았은 간단으로 달려오는 광대의 앞 얼굴을 그대로 가격했다. 바닥에 떨어진 광대에게 다섯 명의 아이는 인정사정없이 발길질을 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를 떠난다. 가게에서 받은 간판은 산산조각이 난 채 광대 주변에 흩어져 있고, 고통 속에서 광대는 얼굴을 찌푸린다. 웃고 있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슬픔과 울분을 이겨내기 위해 웃는 게 아니었다. 광대는 다른 사람이 웃는 순간에 웃지 않은게 아니라, 웃지 못했다. 다른 이와의 상호작용 부재는 그에게 다른 이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자라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재담 모임을 이끄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의 익살과 재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평생 돌보며 의지해 온 어머니도 실은 친모가 아니었고, 자신에게 심각한 아동 학대를 상습적으로 행한 정신병자였다. 

 

     이유없이 청소년에게 두들겨 맞았고, 가게 광고판도 잃어버린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한 직장 동료는 총을 건네준다.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언지와 함께. 그 말을 곧이들은 광대는 아동 병실에 광대놀이를 하러 갈 때 총을 들고 갔고, 춤추던 중 바닥으로 떨어진 총으로 인해 직장도 잃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그는 말끔한 옷차림의 젊은이 세 명이 한 여자를 추근거리는 모습을 목격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생각하며 긴장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과는 무관해도 너무도 무관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실없는 광대의 웃음에 화가 난 젊은이 세 명은 광대를 폭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화가 난 광대는 총을 꺼내 세 사람을 향해 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한 사람은 용케 도망쳐 다음 역에서 전철에서 내려 도망갔지만 광대는 쫓아가 그 사람 또한 사살한다.

 

     정신을 차린 광대는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놀라 도망친다. 며칠 간 집에 머물던 그는 서서히 자신의 행동에 세상이 관심을 비추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이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영웅의 잔상을 봤다고도 말하며 잘한 일이라 칭찬한다. 슬픔과 울분을 웃음으로 억누르며 한평생 살아올 때는 그 누구도 자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슬픔과 울분을 억누르지 말고 느끼는 감정을, 살인의 충동을 행동으로 옮겼더니 세상을 자기를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광대'는 서서히 '조커'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자기를 입양한 후 학대의 대상물로 사용한 엄마를 죽였고, 자기에게 총을 준 전 직장동료 또한 죽였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누군가를 죽일수록 세상을 '조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유년 시절의 부재, 상호작용의 부재, 자기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세상, 외로움과 고독, 가난과 실패.

 

     나만 그렇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커'라는 광기어린 형상은 다른 이에게만 존재하는 혐오스럽게 특별한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조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 모두가 악의 화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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