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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9. 11. 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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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 (2019)

     대한민국 국민치고 인천 상륙작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한다.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은 교도부가 인천 상륙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 전문가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던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하루아침에 전쟁 영웅으로 변했던 더글라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장군. 한국 근대사가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엄청난 충격을 남겼고, 그 충격은 집단 트라우마가 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영화 「장사리」는 내 나라 역사에 무지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만들었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려는 전쟁의 실상에 있어서는 뭐 특별한 감동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 상륙작전이 실행에 옮겨지기 하루 전 북한군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 미끼로 던져진 작전에 평균 나이 17세인 학도병 772명이 군함이 아닌 어선을 타고 장사리로 향했다는 역사적 상황을 직시하는 순간 내 마음 한편이 무언가에 꾹 하고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말이 학도병이지 이 아이들은 군복이 아닌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철모가 아닌 교모를 쓰고 있었다. 전쟁터로, 그것도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돌진하는 아이들이 받은 전쟁 훈련은 2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이 전부였다. 소총 안전장치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이 아이들은 어선에 올랐고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바다를 뚫고 장사리로 향했다. 이 작전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한 한미연합군 간부는 없었던 거 같다. 큰 작전을 위해 작은 작전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영화를 본 후 며칠이 지난 후에도 영화 속 몇 사람의 얼굴이 내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한 학생. 그는 북한군에 사로잡혀 순식간에 신분이 변했다. 남한 고등학생에서 인민군으로. 자신이 남한 사람이란 걸 잊지 않고 살려고, 대한민국 군인에게 사로잡히면 자신이 원래 남한 고등학생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 아이는 남한 교복 위에 인민군복을 입고 생활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오던 중 잠깐 물을 뜨러 간 사이에 인민군의 손에 목숨을 잃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대한민국 군대에 자원입대한 아이. 이 아이는 마지막까지 장사리에 남아 북한군과 싸우다 숨을 거두었다. 남한으로 피난 가는 사촌 형에게 찐 감자를 전했던 아이는 장사리에서 사촌 형을 만났다. 자신은 북한 인민군복을 입고 있었고, 사촌 형은 남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 정보부 장교였던 이명준 대위. 장사리 상륙작전의 실상을 알았던 그는 다른 작전 수행을 해라는 지휘관의 제안을 거절하고 772명 아이들과 함께 어선에 몸을 실었다. 장사리에서 살아남은 그는 장사리에서 죽은 학도병 아이들이 군인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한평생 애쓰다 세상을 떠났다. 기초 군사 훈련도 마치치 못한 아이들은 그때 군인이 '아직' 아니었다. 장사리를 되찾기 위해 몰려오는 북한군에 맞서기 위해 인공 동굴 속에 폭약을 늦게까지 설치하다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하사.

     

     누구도 이 아이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전투 중 속절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 시대가 야속했고, 그런 야속한 시대를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이 씁쓸했다. 야속함과 씁쓸함. 그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음 또한 안다. 나 역시 누구보다 먼저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장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부둥 치고 헤엄쳤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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