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사랑하는 초등학교 4학년 미누는 가장 닮고 싶은 선수 레오넬 메시Lionel Messi로 변신하여 자기를 소개했다. 쉬지 않고 돌리는 아빠의 축구 연습을 두 시간, 세 시간 끝내고 집에 와서 간단하게 목욕을 한 후 거실 안락의자에 엎드려 책을 읽는 미누는 종종 뜬금없이 내게 말한다.
"아빠, 축구는 왜 이렇게 재밌어요?"
"축구가 그렇게 재밌어?"
"네, 진짜 너무 재밌잖아요."
"미누는 좋겠다. 좋아하는 게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좋아할 수 있는게 있는 건 먼 훗날에 축복이란 걸 알게 될 거야."
역시나 녀석은 자기 할 말은 끝낸 후 책을 읽고 있었다. 내 말은, 진지하게 철학적 냄새를 풍기며 건넨 내 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 열광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아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갈고닦은 실력인데, 아빠가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잘못 찬 공을 배달해 주기 때문에 자기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해서 먼 훗날(?) 바르셀로나 축구단에 입단하여 사람들이 누가 축구를 가르쳤냐고 물으면 꼭 아빠라고 말하겠다며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아이다. (현재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심리와 종교 박사 학위를 - 가끔 나 자신도 내가 박사 학위 소지자가 맞나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는데 - 상기시켜 주는 녀석 또한 미누다. 작년에 출판한 책 Religious Experience in Trauma: Koreans’ Collective Complex of Inferiority and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2020)이 아마존Amazon에서 몇 권이나 팔렸는지를 틈날 때마다 확인해 알려주는 녀석 또한 미누다. 난 녀석의 생기발랄함이 참 좋다. 지 엄마를 닮아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순식간에 우정을 쌓고 마는 녀석의 마성 어린 친화력은 부럽기도 하다. 천진난만함과 장난스러움이 얼굴 가득 배어 있지만 축구장에 서면 그 누구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이며 번개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녀석의 용맹함은 보고 있으면 마음에 벅참을 안겨준다. 지금처럼만 자라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지금 이미누의 모습을 고스란히 잘 간직하며 키워나가길 바란다.
2021년 3월 25일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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