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1일 아버지의 날 The Father's Day of 2020
주일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고, 예배 후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른 교회로 파송받은 한 목사님 가정을 환송하는 점심 식사 모임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 달이 넘도록 텅 빈 채 방치되어 있는 교회 친교실에서 가진 후, 잠깐 코스트코 CostCo에 들려 필요한 과일과 음식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미누가 다가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니?"
"편지예요. 오늘은 파덜스 데이니까."
"그래, 고맙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끝내고 거실로 나오니 지누가 다가와 반으로 곱게 접은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연필로 쓴 'Really Important. MJ'라는 짤막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책상 위에 빨간색 봉투가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처가 내게 쓴 편지였다. 마음을 정돈하고 읽고 싶어서 책상 위에 올려뒀다. 처가 깎아준 오렌지를 아이들과 함께 먹고 <놀면 뭐하니?>를 시청했다. 미국에서 <무한도전> 다음으로 시간을 지켜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다 본 후 처는 옷을 갈아 입고 드류 학교 교정을 산책하러 나갔다. 잠시 후 미누 역시 혼자 스쿠터를 탄다며 밖으로 나갔다. 거실 바닥을 한 번 깨끗하게 쓸고, 지누는 지금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고 난 이 글을 쓰고 있다.
편지를 통해 미누가 말했다: "Happy Father's Day. Thank you for being a asome (awesome?) father. Sorry. I didn't know it was Father's Day. I should have known it was. My fault. Sorry? ... Minu."
지누가 쓴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Dear Dad, thank you for getting me better at soccer! I really owe you a lot. You may not have been as kind to me at times, but I understand why you were that way. You did these things because you didn't want me to grow up spoiled and bratty. Thank you for being there when I needed you the most. Thank you for being the best father ever! Thank you for making me the person I am today. Thank you for being a good example. Thank you for watching my brother and I as we grew up. Thank you! Love, your son Jinu."
인생 친구 현민이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남편 광유에게, 여보 오늘 아버지의 날이네요. 며칠 전 지누가 그러더라구요.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늘 열심히 한다고..." 아이들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더군요. 요 몇 일 심란한 마음이 자꾸 당신과 아이들에게 튀어나와 미안하게 생각해요. 나도 뭔지 모르는 불안감이 계속 있어요. 없애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순간들이 찾아와요. 없애려고 한 내가 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불안의 연속인 삶에서 불안을 없애려고 하는 게 나의 욕심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건강하고 이쁘게 자라고 있고 당신과 내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가끔 그걸 잊을 때가 많네요. 쉽지 않은 인생길에서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게 당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참 멋지게 보여요. 난 흔들리지 않으며 걸어가는 게 참 어렵네요. ^^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날이라 특별히 준비한 건 없지만, 나의 사랑을 모두 담아 당신에게 드립니다. ^^ 당신 삶의 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진심을 다해 기도해요. 2002(2020?)년 6월 21일, 아내 현민"
<놀면 뭐하니?>를 보면서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 본다. 이효리, 비, 유재석, 이 세 사람이 모여 올여름을 겨냥한 남녀 혼성 가수단을 꾸렸다. 내 사춘기 시절 한국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이들이 나처럼 중년에 접어 들어 인기몰이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즐겁게 한바탕 놀기 위한 모임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밌다. 목소리로 승부하기가 꺼림직하니 춤으로 대신 부족함을 메운다는 춤노래 가수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산산조각 나는 시간이라 배움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부러움을 느낀다. 연예계에 한 획을 그었던 이들은 노는 모습도 멋드러진다. 그런 그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자연스레 비교하는 내 모습. 그리고, 내 마음속 중심에는 묘한 부러움이 놓여 있음 또한 발견한다.
그러다, 숨을 한 번 크게 고른 후 지누와 미누, 처가 내게 써준 편지를 읽었다. 나.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자부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하게 샘솟았다. 내 아버지는 하고 싶지 않았을 일을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내셨다. 난 적어도 아버지 때보다는 나은 삶을 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 하면서 살 수 있으리라 나지막하게나마 확신할 수 있다. 좋은 아버지 밑에서 조금 더 좋은 아버지로 자리 잡고 싶다.
2020년 6월 21일 아버지의 날에,
뉴저지 드류대학교 가족 기숙사 티플 D103 내 책상에 앉아서 창밖 울창한 숲을 바라보면서,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5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