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가족 (2013)
북한에서 남한으로 숨어 들어와 공작활동을 펼치는 북한 간첩들이 주인공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중년 부부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사춘기 소녀로 구성된 겉보기에는 단란하게만 보이는 한 가족이 있다. 집 밖에서는 가족으로 활동하지만 집안으로 들어오면 이들은 가족이 아닌 군대 서열로 존댓말과 반말의 오고 감이 결정된 남파 간첩 부대로 변한다. 가족은 모두 북한에 있다. 이들이 남한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따라 북한에 있는 가족의 삶이 결정된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 이들은 남한에서 해야 할 작전 수행을 위해 만난 간첩들과 가족을 일구어 살아간다. 남들에게는 가족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가족이라고 여길 수 있는 연대감이 조금도 없다. 연좌 감시제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살아가기에 조금이라도 주체사상에서 빗나간 말과 행동을 하면 언제 어디서 소리 소문 없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간첩에 의해 살해될지 알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툭하면 싸움만 일삼고 살아가는 옆집 가족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허구헌날 아내의 무시에 정색을 표하며 화만 낸다. 아내는 돈벌이가 변변찮은 남편이 영 못마땅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기 위해 남편 몰래 사채를 끌어다 생활한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춘기 아들은 집에서만 목소리가 크다. 외아들이기에 엄마, 아빠를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다. 존경해야 할 대상이 부모님이지만 존경할 부분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부모로 보기보다는 어린아이처럼 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가족과 함께 사는 어머니는 마음이 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에 밖으로만 나도는 며느리가 해야 할 집안일을 별말 없이 대신 해 나간다. 같이 살지만 같이 살기를 싫어하는,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어떻게든 함께 살아갈 도리를 하루하루 새롭게 찾아가는 이 가족의 하루는 시작부터 시끌벅적하다.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처럼 생활해야 하는 남파 간첩 집단에게 옆집 가족은 그래서 독특하게 다가왔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생각나게 했지만, 동시에 북한에 있는 가족이 누리지 못하는 문명의 이기에 쩌들어 그 이기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판단 능력을 상실한 이들이 한심하고 밉다. 그래서 수행해야 할 암살 작전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화 주제는 옆집 가족을 통해 한층 가까이 다가온 한심한 "조선 인민 간나새끼들"의 현실이다.
쌩떽쥐페리는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에서 관계란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기를 거부하는 가족과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으로 보여야만 하는 가족 사이에서 그런 길들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한의 가족은 북한의 가족 속에 잠재한 질서와 체계에 끌리기 시작했고 북한의 가족은 남한의 가족 속에 잠재한 자유분방함과 격의 없음에 끌리기 시작했다. 길들임 자체를 감당하기 힘들어 한쪽은 북한 가족이었다. 남한 가족의 삶에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갈수록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고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처럼 지내야 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가족처럼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가족인척 살아가는 남파 공작원의 처가 북한을 탈출하려다 국경지역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소대장은 남편으로 위장하여 함께 살아가는 부하의 가족을 위해 상부의 지시 없이 특수 임무를 수행하여 남한으로 도망쳐 전향한 전 북한 군대 고위 간부를 살해한다. 특수 임무 수행으로 공을 세워 선처를 바라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해한 이는 북한에서 수십 년 간 공들여 남한에 특파한 특수 간첩이었다. 이로 인해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으로 생활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던 간첩 가족은 죽을 위기에서 그동안에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자본주의를 세뇌시킨 옆집 가족 전원을 암살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남파 간첩 네 명은 이를 거부했다. 한평생 남한으로 도망친 북한인을 찾아 암살하며 살아왔지만 무고한 남한 가족으로 죽일 수는 없다는데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사춘기 소녀 간첩을 제외한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간첩은 살해 당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바닥을 관통하여 네 사람의 손을 하나로 이은 쇠줄에 엮여 자신들의 시체를 수장하기 위해 바다 깊은 곳으로 나가는 배에 앉아 이들은 지금까지 해온 연극과는 다른 연극을 시작했다. 옆집 가족의 어느 날 아침 풍경을 흉내 냈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엄마와 아빠, 이를 보다 못해 화가 난 아들, 이 세 사람을 품기 위해 저녁에는 모두 함께 외식하자고 제안하는 할머니. 단 한 번도 역할극을 나눠 연습해 본 적도 없었지만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배역의 대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가족이 그리웠을까? 아니면, 그만큼 가족이 아니었지만 가족처럼 단 한순간만이라고 남한에서 살아보고 싶었을까? 단 한 번의 연극을 마친 후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엄마, 아빠가 자결했다. 홀로 남겨진 사춘기 소녀 간첩. 이들의 연극을 말없이 지켜본 연좌 감시 간첩단은 사춘기 소녀를 죽이지 못했다.
한 참 후 사춘기 소녀는 남한 사춘기 소녀의 복장으로 옆집에 살던 친구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영화는 끝났다.
"과연 통일이 될 수 있을까?"를 묻기 보다는 "통일이 된다면 남한과 북한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영화였다. 남한은 자본주의로 세뇌되어 물질만능주의의 최전방에서 오늘도 열심히 질주하고 있다면, 북한은 주체사상이 뼛속까지 주입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이란 나라 이외의 세상을 꿈꾸지 못한다. 이런 두 나라가 하나가 된다면 어떤 심리적 지각변동이 일어날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을 함부러 하면 안된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알았고, 느꼈다. 통일. 참 멀고도 험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