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담긴 현실

우리는 썰매를 탄다 (2014, 2018)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4. 29. 09:49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한국인의 관심과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운동 종목이 두 가지 있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7.5km에서 금메달을 딴 신의현 선수와 아이스하키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 


한국 아이스하키 장애인 국가 대표 선수들의 일상을 담은 이 기록 영화는 원래 2014년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2018년까지 상영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업성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선수들 가족과 친구를 제외하면 그런 종목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거다. 하지만, 편견과 차별, 소외 속에서 선수들은 절망과 씨름하며 노력했고,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장애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세상을 향해 증명했다.

 

시시포스가 생각났다. 시시포스는 ‘비극적’ 영웅이다. 무거운 바위 하나를 언덕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고난을 영원토록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영웅. 언덕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고 한숨 쉬려고 하는 순간 바위는 반대쪽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진다. 반대쪽으로 내려가 다시 바위를 굴려 언덕 정상까지 올라가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 영원토록 바위를 굴려야 하는 삶. 


지금까지 난 삶을 살아내고, 견뎌내고, 버텨내는 과정을 시시포스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기록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비장애인의 삶은 시시포스의 삶에 비교할 수 없다. 왜냐고? 비장애인은 바위를 굴리며 올라가다 잠깐 바위에 등을 기대고 무게 중심을 잡아 쉴 수라도 있지만, 장애인은 그럴 수 없다. 바위를 굴리는 것도 힘들지만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다. 언덕 위에서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진 바위를 향해 걸어 내려갈 때, 비장애인은 걸음걸이를 조절하며 잠시나마 쉴 수 있지만, 장애인은 내려가는 거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다. 


두 다리를 정상인처럼 사용할 수 없기에 아이스하키를 하려면 썰매를 타야 하고, 동시에 하키공을 몰고 다니다 그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 선수와 끝없이 어깨로 부딪히며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썰매에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에 피가 찬다. 왜 그런지는 움직일 수 없어 한평생 누워 있어야 하는 중풍 환자 몸에 생기는 욕창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비가 오려 하면 사고 혹은 병으로 잃은 다리에서 참기 힘든 통증이 몰려온다. 환상통. 사라진 신체 부위가 다시 생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경험하는 고통. 비장애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장애인 국가대표. 대부분이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병 혹은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한 선수가 말했다. 죽고 나서 하늘나라에 가면 기필코 두 가지 인생을 정말 꽉 채워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부족한 재정 지원으로 국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사비를 모아 비행기 표를 사야 했고, 합숙 훈련할 때는 탈의실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래도, ‘국가대표’라는 자격지심에,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형과 동생들이 함께 있기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각자에게 주어진 바위(장애인의 삶)를 밀며 언덕을 오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는 기준을 새로 하나 더 만들어야 할 거 같다. 주어진 혹은 맡겨진 각자의 삶의 무게를 힘들지만 꿋꿋하게 잘 버텨나가는 이는 비장애인. 그게 힘들어 요령을 피우며 피하고, 그러다 실패하면 비관과 절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 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