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지누는 빈부 격차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3. 15. 00:47

2018년 3월 13일 화요일


어제 드류 역사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습관적으로 전자우편함을 확인했다. 지누 학교 선생님과 처가 주고받은 전자 편지 하나가 전달되어 우편함에 담겨 있었다. ‘뭐지?’ 편지를 열어봤다.

 

지누가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 시간 내내 기분이 상해 앉아 있다가 학교가 끝나고 가방을 챙겨 들고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만나려고 걸어 나가다 복도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고, 엄마를 만나서는 대성통곡을 했단다. 그걸 지켜본 선생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처에게 물었고, 처는 지누에게 들은 이야기를 선생님께 알리는 편지글이었다. 지누는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에게 화가 났고, 그걸 참다 참다 도저히 더 참지 못해 울었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친구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너무 화가 나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단다.


일이 끝난 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지누를 데리고 유도장에 갔다. 왼쪽 종아리 통증이 완전히 낫지 않아 대련 시간 앉아서 쉬다가 지누 앞에 아무도 서 있지 않은 걸 보고 일어나 지누 앞에 섰다. ‘지누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느슨하게 느긋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오늘처럼 또 친구들에게 당한다.’ 차분하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녀석의 도복 깃을 꽉 잡고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던졌다. 오금대떨어뜨리기 (Tani-Otoshi), 허벅다리걸기 (Uchi-Mata), 밭다리후리기 (Osoto-Gari), 소매들어허리채기 (Sode-Tsurikomi-Goshi), 안오금띄기 (Sumi-Gaeshi), 등 할 수 있는 기술을 골고루 사용하여 녀석을 바닥에 던지고 또 던졌다. 지누에게 가난을 대물림하는 내가 싫었고, 녀석은 더 강하게, 당당하게, 꼿꼿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바람에서 할 수 있는 한 힘껏 녀석을 바닥에 던지고 또 던졌다. 평상시와 다르게 녀석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나에게 다가왔다.


“지누야,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아빠는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이 뭐죠?”


“말 돌리지 말고,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엉엉 울었냐?”


“친구들이 날 놀렸어요.”


“뭐라고? 그리고 누가?”


“생각이 안 나요. 너무 화가 나서.”


“그래도 화가 난 말은 생각이 날 거 아니니. 화가 난 이후에 들은 말은 생각이 안 나겠지만.”


“생각이 정말 안 나요. 너무 화가 나서.”


“지누야, 오늘 우리가 유도장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니?”


“네.”


“그래, 네가 만약 네 하루를 잘 살았다면, 그날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는 알고 있을 거 아니냐? 만약 그런 걸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면, 넌 네 하루를 너무 무책임하게 산 게 된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그런 널 위해서는 아빠가 도와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4분을 줄 테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봐라. 4분 후, 11시에 다시 물을게.”


그 순간 10시 56분으로 있던 시계는 57분으로 변했다.


“아빠, 그럼 5분을 주면 안 돼요?” 


“11시에 묻는다고 했다.”


“네.”


오후 수업 후 지누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빌린 후 컴퓨터 책상에 앉아 구글로 단어 검색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지누는 말야…”


한 단어가 강렬하게 지누 마음속에 들어왔다.


“Jinu is a hobo. 지누는 집이 없는 부랑자야.”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다른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잠시 후 다른 한 아이가 지누가 자기가 서 있는 자리 바로 앞 책상에 앉아 있다는 걸 눈치채고 친구들에게 알렸다. 아이들은 더는 지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지누는 자신에 대해 친구들이 하는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있었고, 그 말에 대해 말대꾸할 수 없었다. 녀석은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노년을 나고 싶은 동네 10위에 안에 들었던 매디슨 사람들이 사는 어마어마하게 큰 집과 자기가 사는 드류 대학교 가족 기숙사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빈부 격차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대꾸할 수 없었다. 우리도 집이 있다고, 드류 가족 기숙사에 산다고 말하면, 자신이 가난하다는 걸 친구들 앞에서 인정하게 된다.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나 보다. 서러웠을 거고, 답답했을 거고, 화가 났을 거다. 


“지누야, 아빠는 옛날에 어렸을 때 말야. 지금 우리가 사는 집 거실 알지? 그 거실보다 조금 더 작은 집에서 큰고모, 작은고모, 할머니, 할아버지랑 함께 살았거든. 친구들 집에 놀러 가보니 아빠 집에 너무 작더라. 쪽 팔리더라.”


“쪽 팔리다가 뭐예요?”


“아, 그건 ‘쉐임shame’이야. Feel shameful. 그런데, 뭐 어쩔 수가 없잖아.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열심히 사셨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지누는 자동차 조수석 창문에 생기기 시작한 서리를 손가락으로 지우고 있었다.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크고 나서 보니 아빠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야. 아빠보다 부자인 사람도 많지만, 아빠보다 더 가난한 사람도 많더라. 아마 유도장에서 우리가 제일 가난할걸? 야, 그럼, 가난하니까 유도도 열심히 하면 안 돼?”


“아니요.”


“그렇지. 가난한 건 잘못이 아니야. 열심히 살지 않는 게 잘못이지. 지금 아빠는 어릴 때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사셨던 집보다 더 큰 집에서 산다. 그러니, 지누야, 넌 나중에 크면 지금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서 살아라. 네가 해야 할 걸 열심히 잘 해서 돈도 많이 벌면 되겠다. 그치?”


“네.”


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내 오른쪽 어깨로 끌어당겼다. 지누는 말없이 내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나도 말없이 지누를 오른손으로 안아줬다.


10살.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언제 이렇게 자라나 부자와 빈자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상대적 빈곤을 깨달았을까? 그게 사람이라면 반드시 직면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스스로 답변을 만들어야 하는 삶의 일부분이란 걸 알고 있을까?


집에 돌아와 지누가 목욕하는 사이에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처에게 말했다. 처는 그걸 들은 후 한동안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지누와 처가 자러 방에 들어간 후 지누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Dear Teacher Katherine Lade,


Thank you for the email full of your concern and love for our son Jinu! When I read your email forwarded by my wife Hyunmin, I was working so I could not do anything. After work, as usual, I went to our Judo dojo with Jinu. On our way back home, I had a talk with Jinu about what happened to him at school today. Because what I heard directly from Jinu could clean up all our unnecessary imagination, I would like to share it with you.


Jinu was in the school library. After checking out a couple of books he wants to read, he sat at a computer desk and began some word-research. All of a sudden, Jinu heard a voice talking about him. One student said, "Jinu is a hobo." Other students responded it with a big laugh. Suddenly another student noticed that Jinu was sitting in front of them. They stopped talking about Jinu. The word came deeply into Jinu's mind and made him more and more nervous to the point that he could not hold himself calmly anymore.


Well, honestly, I could not convince or push him to think that the student's description was totally wrong because I know that they think and act on the basis of what they have experience for the past 10 years in Madison. I was surprised at the depth and width of Jinu's thought. His brother Minu, 6, would respond, "No, we have our home! It is a Drew apartment." Unfortunately or fortunately, Jinu knows what the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looks like, of course, relatively speaking.


With that being said, I hope my email could sort out any unnecessary feelings or imaginations about Jinu's crying today. Yes, it was shocking to me and my wife. But, well, this is part of life Jinu must learn, accept, and resolve by himself.


I appreciate your careful concern for Jinu. We just hope that Jinu can make 'good-enough' memories at school and with his friends in childhood because that is what Jinu will emotionally rely on for the rest of his life. I hope that you had a sound sleep last night and already began a good day.


Sincerely,

KwangYu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