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2. 12. 14:13


두환 군부독재가 종말 향해 달려가던 그해 한국에 일어난 일을 다루는 영화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독재자가 일군 업적과 저지른 만행을 차분히 들여다 볼 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원한 독재 불가능하다. 하긴 논리에서 북한은 잠깐동안 제외해야겠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말마따나 북한은 정치를 종교화하여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성공했다.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 삼대 정권 교체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영원한 독재는 불가능하다는 사실 뒷면에는 다른 서글픈 사실이 숨어있다. ‘영원한 독재는 불가능하구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독재자는 수많은 사람을 억압했고 죽였다. 영화 1987 전두환 군부독재가 사실을 깨달은 해에 대한 이야기다.


     배역을 맡은 영화배우들은 거의 모두 다른 영화에서는 주인공 역으로 출연한 이력이 있다. 그런데, 영화 1987 뚜렷한 주인공이 없었지만,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없으리만치 진행속도는 빨랐다.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뚜렷한 주인공이 없었기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일 있었다. 말인즉 1987 전두환 군부독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어느 사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이를 실현한 주인공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사실을 영화에 담으려 했다. 주인공이 없는 영화.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이 있는 영화.


     앎과 실천 사이에서 갈등할 알았던 대학생들, 틀린 바로잡기 위해 과감히 손에 쥐고 있었던 내려놓을 알았던, 뜻을 위해 작은 뜻을 희생할 알았던 종교인들, 각박하게 살았지만 사람 사는 , 그러니까 인정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시민들, 거대한 권력 기관 앞에서 눈으로 봐도 귀로 들어도 아닌 바르다고 눈감아줄 수는 없다고 후회 없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알았던 검사와 교도관, 간수.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이룬 20세기를 지배했던 독재정권 타도였다.

현민이는 마음이 아프다는 짤막한 문장으로 영화를 소감을 말했다. 아들 지누는 택시운전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막내 미누는 안방 침대에서 콜콜 자고 있었으니 소감을 물을 없었다.


     난 '나라 굿'이 생각났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떠한 굴곡을 겪으며 지금 순간까지 흘러왔는지를 한국에서 배우지 않았다.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형들은 대한민국 정부 하면 일단 욕부터 했다. 그런 형들의 태도가 싫어서 한국 근대사에는 더더군다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들이 여기 앉아서 아무리 고래고래 고함치고 욕해봤자 변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형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생각하면 괜히 안타깝고 서글퍼진다. 젊은 시절, 열정과 투지라고 아름답게 표현했지만, 남아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몰라 마음속 불만과 짜증을 국가와 정부에 마음껏 투사한 아니었을까?


     근래 부쩍 한국 근대사를 다루는 영화를 찾아서 보면 영화를 통해 한국 사람 모두가 마음속에 품어 한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우리의 20세기를 하나가 되어 뒤돌아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있지만 말할 없었던 한스러운 일들. 틀렸다는 알지만 틀렸다고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남영동으로 끌려가야 했던 시절. 우리 자신을 거짓으로 무장해야만 있었던 시절을 지금 대한민국은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새로운 집단 기억으로 승화sublimation하고 있다. 시간이 걸릴 거다. 가지 걱정스러운 역시나 새로운 집단 기억은 잘못 만들어진 과거 기억을 삭제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고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할 무엇일까? 잘못된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깨닫는 가지는 확인 절차가 한국사회에서는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영화 1987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보고 느낀 점과 깨달은 점을 함께 나눌 있는 날을 내가 살아있을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