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담긴 현실

좋은 시간 Good Time (2017)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2. 12. 13:23



남자가 좁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표정을 보니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 그 남자를 향해 말하는 이는 정신과 의사다. 단어 연상법으로 심리 검사를 하는 중 ‘할머니’란 단어에서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뒤틀렸다. 정신과 의사는 태도를 사뭇 진지하게 바꾸어 ‘할머니’란 단어가 그 남자에게 남긴 심상에 관해 캐묻기 시작했다. 순간 한꺼번에 몰려온 감정의 파도를 감당할 수 없어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남자를 놀란 눈으로 의사가 바라보는데, 사무실 문을 확 열어젖히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얼굴에 “나는 건달입니다”가 쓰여 있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동생과 할머니에 관해 이야기했다는 걸 들은 건달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동생을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두 남자가 은행에 들어간다. 똑같은 가면을 쓰고 은행원에게로 다가간 그들은 쪽지에 무언가를 써서 가방 하나와 함께 은행원에게 건넸다. 나도 총을 가지고 있는 강도니 순순히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달라. 은행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이 담당하는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든 돈을 모두 강도 두 사람이 준 가방에 넣었다. “이게 현재 내가 가진 모든 돈이다”고 쓴 쪽지와 함께. 은행 강도 두 사람은 은행 창고에 보관 중인 돈까지 요구했다.


     은행을 나온 두 사람은 어느 으슥한 골목에서 가면을 벗고 한 가게 뒷문을 열고 들어가 앞문으로 나왔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그들을 태우러 왔다. 주변에서 경찰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은행 털기에 성공하여 만족스럽게 범행지를 벗어나는데, 돈이 든 가방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지?”라고 서로에 묻는 순간 은행 직원이 돈 가방에 몰래 넣은 액체가 연기를 내며 폭발했다.


     형은 경찰을 피해 도망쳤지만, 동생은 그러지 못해서 구치소에 갇혔다.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구치소에서 동생은 보고 싶은 텔레비전 채널을 다른 사람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보겠다고 우기다가 폭력사건에 휘말리고, 집단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된다. 형은 동생을 보석금으로 구치소에서 빼내기 위해 은행에서 훔친 돈을 급행 변호사를 찾아간다. 그 돈을 받은 변호사는 돈의 출처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형은 여자 친구를 설득해 신용카드로 나머지 필요한 금액을 일단 지불하려 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자 친구 엄마가 딸의 신용카드를 정지시켰기 때문에.


     형은 혼자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적절한 ‘인내’와 ‘용기’로 동생을 병원에서 빼냈다. 그런데, 동생이 아닌 다른 사람을 잘못 보고 병원에서 빼냈다. 그것도 동네 건달 축에도 들지 못하는 지질하고도 지질한 마약을 파는 친구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사람을 동생으로 착각했다.


     동생을 구출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형은 그 사람이 웃자고 한 말속에서 얼마전에 만든 강력한 마약 한 병이 뉴욕 시내 한 놀이공원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그 사람을 앞세워 그 놀이공원으로 갔다. 철장으로 만들어진 담을 넘어 공원에 들어간 형은 마약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헤맸는데, 그러다 순찰 중인 놀이공원 안전요원에게 발각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안전요원을 두들겨 패서 기절시킨다. 그런 중 이상 신호를 감지한 경찰이 놀이공원에 들이닥쳤다. 이를 모면하기 형은 안전요원으로 변장하고 기절한 진짜 안전요원 입에는 그곳에서 찾은 마약을 한 모금 입에 넣었다.


     안전요원으로 변한 형은 안전요원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잡히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모든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경찰차에 탄 형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피곤함이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경찰에 잡힌 동생이 정신과 의사 감정으로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형이 말하면 은행 강도질도 스스럼없이 했던 동생은 스스로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첫 심리치료 수업을 받는 동생은 난생처음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 같았다. 마치 숙고의 중요성을 영화를 시청하는 이들에게 알려주듯이.


     영화는 서구판 일장춘몽을 이야기한다. 하룻밤에 일어난 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꿈의 시작과 끝을 압축해서, 하룻밤에 일어난 일을 긴박감을 곁들여, 보여준다. 일일야몽一夜虛夢이다. 인생, 덧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덧없지 않게 자신을 잘 돌아보면서 살아야 하나? 똑 같은 시간에 형은 경찰차에, 동생은 심리치료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