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 (2016): 쇠톱 고지에서
쇠톱 같은 급경사에서
독실한 제7일 안식일교 신자 데스몬드 도스 일병은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 총을 들지 않는 조건으로 세계 제2차 대전 미군 위생병으로 입대했다. 120 미터 높이 가파른 경사지 위 위장 폭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요새를 파괴하고 점령하는 임무가 주어진 부대에 속했다. 지휘부는 믿어지지 않는 가파른 경사 때문에 ‘쇠톱hacksaw’이라 불리는 장소를 점령해야 오키나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스 일병이 속한 대대는 격전 중 후퇴했다. 처절한 패배였다. 후퇴하면서도 살려달라고 외치는 친구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했던 도스 일병은 경사면을 내려가지 못한 채 밤을 맞이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다. “당신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분노에 휩싸인 도스 일병의 얼굴. 그때 “살려줘.”라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멜 깁슨 감독은 절망에 휩싸인 인간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말한다. 그날 밤 도스 일병은 부상자 75명을 절벽 밑으로 내려 구했다. 한 명 또 한 명 부상자를 구하러 적진 속으로 기어갈 때,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한 명만 더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했던 도스 일병의 아버지는 전쟁이 남긴 정신적 외상 증후군으로 술에 의존한 채 살아갔고, 그는 자식과 아내에게 가혹했다. 사춘기 시절 도스는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하는 아버지를 말리려다 총으로 위협하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강력한 폭력성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겁에 질린 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흐느껴 울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다짐했다. 절대로 살면서 총을 들지 않겠다고. 그래서 위생병으로 자원입대했다. 조심스럽고 수줍은 그의 성격과 그의 신앙적 결단을 함께 입대한 동기들은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학대하며, 자원 제대하길 바랐다. 흔들리지 않았던 도스 일병은 1994년 여름 제77 사단, 307보병대로 배치됐다. 오키나와로 발령 나기 전에 그는 괌과 필리핀에서 위생병으로 일했다. 핵소 고지에서 수류탄 파편으로 상처 입은 그는 일본군이 발사한 대포로 인해 한쪽 팔이 완전히 부러질 때까지 동지를 구하려고 노력했단다.
1945년 10월 12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전투원의 희생적 수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주는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도스 씨에게 수여했다. 제대 후 도스 씨는 부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5년을 보내야 했고, 그와 중에 생긴 결핵으로 폐 한쪽을 잃었다. 더는 기준 노동 시간을 채우면서 일할 수 없었기에 그는 여생을 교회를 위해 일하는 데 바쳤다. 도스 씨의 아들 데스몬드 주니어 씨는 언젠가 아버지께 그날 밤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물었다. 도스 씨가 말했단다. “난 그날 밤 그렇게도 찾고 싶었던 대답을 결코 들을 수 없었다.” 데스몬드 주니어 씨가 말했다. “전쟁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끝나지 않아요. 그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손을 잃고 눈을 잃었는데, 어떻게 그 전쟁이 끝날 수가 있어요? 건강하게 전쟁터에 보낸 이가 휠체어를 타고 다시 돌아왔는데, 어떻게 그 전쟁이 끝날 수가 있어요?”
도스 씨가 살아있을 때, 그 어떤 영화 제작자 혹은 소설가가 찾아와 그의 전쟁 경험을 영화 혹은 소설로 상품화하자고 제인해도 거절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를 닮아 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멜 깁슨 감독은 사실성에 충실했다. 9살 아들 지누랑 영화를 보면서 부담되고 머뭇거려지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군복과 무기를 미화시켜 상품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통해 부모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소비문화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지누가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영화를 함께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지누에게 물었다. “어떻게 봤니?” “재밌었어요.” “전쟁, 무서운 거지?” “네.” “전쟁은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거란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북한은 아직도 전쟁 중이야.” “왜요?” “그건, 다음에 이야기해줄게. 너무 길거든.”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지누와 함께 양치질하고 잠자리에 들었다.